초·중등교육 혁신을 위한
열 가지 정책을 간곡히 제안합니다.
존경하는 경기 도민과 국민 여러분, 그리고 새 학기를 맞아 어느 때보다 바쁘실 우리 경기도 선생님들과 활기 찬 학기를 시작한 학생들, 믿음직스런 우리 학부모님들, 모든 교육공동체 가족 여러분, 이번 새 학기에는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활기찬 학교생활을 하시길 바랍니다. 새 학기를 맞아 우리 경기교육가족 모두의 마음에 따뜻한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오늘 우리 교육의 앞날, 초·중등 교육혁신에 대해 간곡한 부탁과 호소 말씀을 하고자 합니다. 지난 번 회견을 통해 저는 초·중등 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학입시와 대학구조 개혁 방안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초·중등 교육 개혁방향에 대해서도 그동안 기회가 닿을 때마다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학기 최대 현안이 되고 있는 학교폭력 문제만 보더라도 초·중등교육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젠 정말 교육을 바꾸고 새로운 문화를 이뤄 학교를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올해는 대한민국 국가 정책이 결정되는 중요한 한 해입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 초·중등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습니다. 저는 교육자치에서 가장 큰 부분을 맡아 혁신을 이끌어온 당사자로서, 이제 그 개혁을 국민적 과제로 제시하고 함께 실현해나가자는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먼저 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 전환이 필요합니다. 다 함께 잘 사는 사회, 행복한 학교를 위해 교육을 보는 철학, 그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저는 초·중등교육 혁신을 위해 국가적 과제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제안합니다.
첫째, 교육비를 개인부담에서 국가부담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합니다. 공교육비를 늘리지 않고 사교육비를 줄일 수 없습니다. 무상급식을 넘어 무상교육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둘째, 경쟁교육에서 협력교육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합니다. 과도한 경쟁문화가 초·중등 교육을 질식시키고 있습니다. 다수 학생을 배움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서로 돕고 존중하는 노력이 수업과 학교생활 전체에서 살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통제에서 자율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합니다. 학교는 각종 지침과 공문으로 움직이고, 자율성과 창의성을 잃어버렸습니다. 학교를 변화시키기 위해 단위학교 구성원의 자율성과 자발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서는 수많은 개혁 과제가 실현되어야 합니다. 가계를 위협하는 사교육비, 심화되는 대학서열화 현상,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는 문제풀이식 교육, 특목고 및 자사고 확대에 따른 일반계 고등학교 슬럼화 현상, 학교폭력의 심각성, 배움으로부터 달아나는 학생 등을 생각할 때 교육자로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 과제 중 가장 우선적으로, 꼭 실현돼야 할 열 개 과제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과밀학급을 없애고, 학급당 인원수를 25명 이하로 만들어야 합니다. 학급당 학생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0~25명 정도 수준은 되어야 합니다. 이 수준은 학교폭력 문제 해결과도 연관됩니다. 교육과정 다양화·특성화, 학생수준에 맞는 개별지도, 학생의 건강한 인격형성을 위한 생활지도를 위해서는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25’라는 숫자로 상징되는 선진교육으로의 진입 문턱을 이제는 반드시 넘어야 합니다.
둘째,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비율을 상향해야 합니다. 학급당 인원수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재정부담을 늘리고 관련 세수 확보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교육에 대한 관심은 높은데 비해서 공교육비가 낮기 때문에 사부담 공교육비와 사교육비가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교육공공성 강화를 위해 보편적 교육복지를 확대하자는 담론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내국세의 20.27%에 머물고 있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비율을 상향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셋째, 유아 및 고교 무상교육, 국가가 책임지는 무상급식을 실시해야 합니다. 거의 모든 학생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있습니다. 대다수 OECD 국가들처럼 의무교육 연령을 높이고 고교 무상교육 도입을 서둘러야 합니다.
동시에 유아 무상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국공립 보육시설을 과감하게 늘리고, 무상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지자체가 책임지는 무상급식도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어떤 측면에서 판단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이미 그 정도의 보편 복지를 시행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넷째, 자사고를 폐지하고 특목고를 정상화하며, 혁신학교를 늘려야 합니다. 특목고와 자사고 입시성과는 사실상 좋은 아이를 뽑는 선발효과에 기인한 것입니다. 좋은 아이를 뽑아 입시에서 성과를 올리는 것에 어떤 교육적 가치가 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학교의 가르침이 성과를 내는 교육이야말로 교육적 가치를 갖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경기도 혁신학교 경험은 선발효과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바로 학교의 가르침 효과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 동네 학교, 바로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좋은 학교로 만들어야 합니다.
다섯째,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개선해야 합니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수업과 평가 체제를 왜곡하고, 문제풀이 교육을 반복하게 만듭니다. 학습부진학생에 대한 지도는 그 아이를 가장 잘 아는 학교 교사들이 자신의 판단으로 지도하면 됩니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전수조사가 아닌 표집조사면 충분합니다.
여섯째, 지방교육자치 활성화가 필요합니다. 헌법, 교육기본법, 지방교육자치법은 포괄적으로 교육자치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위 법령인 대통령령, 교과부령, 교과부 행정지침 등이 매우 세부적인 내용까지를 규정함에 따라 교육자치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초·중등교육에 관한 사항은 교육감 권한으로 기준을 명확하게 한 후 최대한 자율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교육자치권을 강화해야 합니다. 교육 현장의 실정에 맞게 교육행정이 이뤄지는 것이 바로 혁신입니다.
일곱째, 교과부의 시·도교육청 평가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교과부 시·도교육청 평가가 시·군교육지원청 평가기준을 좌우하고, 시·군교육지원청 평가가 학교평가 기준을 정하는 한, 대한민국 교육에서 전시행정은 사라질 수 없습니다.
현재 교과부 시·도교육청 평가지표는 교과부 각 부서 정책 우선순위를 기준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아무리 잘 만들어진다고 해도 학교가 변하지 않습니다.
여덟째, 아동청소년 인권법 제정이 필요합니다.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 아동청소년의 인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능동적으로 책임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 국회는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하였습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가정과 학교, 사회가 아동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도록 하는 포괄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초중등교육법 18조 4항을 보면 ‘학교의 장은 헌법·국제인권규약에 명시된 학생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들 법과 협약은 국내에서도 말 그대로 지켜져야 할 ‘법’입니다. 이런 법적 사항을 확실히 하고 아동청소년 인권이 실질적으로 보호될 수 있도록, 이제는 입법부 차원에서 아동청소년 인권법 제정을 서둘러야 합니다.
아홉째, 교장임용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교장임용제도는 실질적으로는 기존 승진형 임용제도 골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근무평정에 기초한 승진제도와 내부형 공모제도 간 공정한 경쟁이 필요합니다. 어떤 제도가 학교를 바꾸는데 유용한가를 검증하고, 두 제도가 적절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학교의 변화와 혁신에 있어 교장선생님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열째, 잘 가르치는 교사를 많이 양성하고, 교원의 자율성을 존중 하는 시스템의 정비가 필요합니다. 좋은 교사가 교육을 바꿉니다. 교사 양성과 교육현장 적합성을 높이기 위해 교사양성 대학과 학교교육 현장과의 연계 강화가 필요합니다. 학교와 교사양성기관이 협력하여 교사양성기관 교육과정 공동개발, 교사와 교수의 팀 티칭 및 공동연구, 교사의 교사양성대학 파견근무제, 교·사대 학생의 교사도우미 제도 등 연계활동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원 및 학교평가에서 성과급을 폐지하고, 근무평정과 교원평가를 통합하는 등의 제도 개선과 함께, 교과별 평가가 아닌 교사별 평가가 도입돼야 하는 것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경기도 교육청은 지난 3년간 “생각을 바꾸면 모두가 행복한 교육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으로 혁신학교를 만들어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혁신학교에서는 존중과 배려의 학교 문화, 참여와 소통을 통한 학교운영, 학습 공동체를 통한 집단지성 구성 등으로 교육과정을 특성화하고 다양화하면서 공교육 혁신의 모델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교육 일선에서 교육혁신을 이끌어온 저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열 가지 과제들은 대한민국 교육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할 최소한의 일들입니다.
특히 이번 총선에 임하는 분들에게 호소합니다. 여야나 정치이념을 떠나 이 과제들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제도화를 통한 실현에 적극 동참해 주실 것을 부탁합니다. 제가 제시한 과제는 잘못된 교육으로 인한 학교현장의 고통과 국가발전의 지체가 어느 정도인지를 고민해 오신 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가방을 매고 활기찬 걸음으로 학교를 향하는 모습은 늘 저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교육가족 여러분, 행복한 새 학기를 맞으십시오. 모두가 행복한 경기교육, 행복한 교육공화국을 향해 다 함께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2012년 3월 6일
경기도 교육감 김상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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