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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기교육정책 칼럼

[홍인기 교육정책 칼럼] 선행학습 금지의 기준은 교과서가 아니라 교육과정성취기준이어야 한다.

by 조은아빠9 2013.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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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통령직인수위는 선행학습 금지와 관련된 공약을 이행하기 위하여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학교시험과 입시를 규제하는 이른바 공교육정상화촉진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그동안 학교와 대학의 입시에서 변별력을 가진다는 핑계로 선행학습을 유도하는 어려운 시험을 제출하여 학생들의 사교육을 조장해 온 잘못을 고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선행학습 금지가 사교육기관까지 확대되어야 실효성을 거둘수 있겠지만 당장 학교시험과 입시에서 실시되는 것은 기정사실로 굳혀지고 있다. 

학교시험과 입시에서 선행학습 내용을 출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어떻게 기준을 정하는가 하는 최근 논의를 보면서 교사로서 안타까운 점이 있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선행학습을 막기 위한 문제 출제 기준을  "교과서"로 한정지어 이야기 하는 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다. 박근혜 당선자의 공약집에서도 " 학교시험과 입시에서 교육과정을 넘어서는 선행 학습내용 출제 금지 및 처벌 기준 명문화" 라고 밝히고 있을뿐 "교과서"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교과서는 교육과정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이기 교과서 자체가 교육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시험이나 입시에서 출제범위를 교과서로 제한할 경우 사교육이 줄어들기는 커녕 사교육은 더욱 늘어나고 학교 교육은 질적인 저하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내신을 관리해주는 사교육시장에서 학교의 내신시험을 쪽집게 처럼 맞출수 있는 이유는 학교의 교과서 안에서 출제할 수 있는 시험의 유형은 매우 제한되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가 중간 기말 고사를 치르기 전 일주일동안 대부분의 학원에서는 시험대비 준비기간을 가지게 된다. 실제로 학원은 일주일 정도이면 내신시험을 충분히 준비시킬수 있다. 내신시험에서 나올수 있는 문제의 유형이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원은 자신의 영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험이 치루어지지 않는 대부분의 기간에는 선행학습을 중심으로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학교가 그동안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를 내는 이유 또한 교과서 안에 문제를 낼 경우 그 내용이 너무 한정적이고 학원이 너무나 잘 대비하기에 조금씩 어려운 문제를 출제해 온 것이다. 학교와 학원의 선행학습의 악순화 구조의 핵심에는 교과서가 있다. 그런데 최근의 논의가 선행학습을 판가름 하는 기준으로 교과서가 자꾸 언급되는 것은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악화시키는 꼴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선행학습금지 무용론"이 되두하게 될 것이다. 선행학습 금지법이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학교교육을 망가뜨렸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될 것이다.

지금도 학교교육이 획일화되고 교육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교과서 중심의 교과별 평가가 가장 핵심적인 이유이다. 예를 들어 국어과목의 경우 한 학년의 학급수가 많은 경우 여러명의 선생님들이 수업을 가르치게 된다. 교과서의 지문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읽을거리를 통해 창의적인 방식으로 토론식 수업을 진행한 교사의 학생의 경우 내신 시험에서는 나쁜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교사들이 공동출제를 하는 경우 그 문제를 최종적으로 선정할때 기준은 교과서에 그 내용이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것이다. 결국 창의적 수업은 포기하고 교과서 내용을 꼼꼼히 가르치는 모두가 똑같은 수업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선행학습을 판별하는 기준이 교과서가 될 경우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시험에서 선행학습을 판별하는 올바른 기준은 무엇이어야 할까? 한마디로 말하면  "교과별 성취기준"이다. 국가에서 교육과정을 만들때 교과를 통해 학생들이 달성해야 할 성취기준을 제시한다. 학생이 학습을 통해 성취기준을 적절히 달성하기 위해 교과서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성취기준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교과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다. 교과서는 성취기준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교사들이 전문가라면 보다 창의적이고 시의 적절한 내용을 가지고 성취기준을 달성할 수 있다. 교사들이 교과서가 아니라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교육할때 창의적이고 수준높은 수업이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지나치게 교과서에 얽매여 성취기준에 따른 적절한 교육내용에 대한 합의가 매우 부족하다. 교과서가 있기에 더 이상의 논의가 막혀있었다. 

"교과별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선행학습 시험을 판별하는 일은 매우 의미가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 교사들은 교과서를 경전처럼 여겨오면서 성취기준에 대한 논의는 매우 미숙하기 때문이다. 수학교과처럼 성취단계가 분명한 교과를 제외하면 교과별 교육과정을 달성하기 위한 성취기준에 대한 합의가 충분하지 않고 교사들 사이에 논의나 공유의 정도도 매우 미성숙하다. 하지만, 올바른 기준을 가지지 못하는 정책은 반드시 실패하는 것을 여러번 경험했다. 선행학습을 올바로 막아내어 사교육비를 줄이고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교과별 성취기준"에 대한 합의와 공유를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 선행학습 금지가 학교교육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선한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과 언론이 선행학습 금지를 위한 올바른 기준을 찾아내기 위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