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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실패를 받아들이기(사도행전 16:6-18)

by 조은아빠9 2011.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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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어떻게 실패가 없을 수 있을까? 어떻게 좌절이 없을 수 있을까? 우리가 가장 겪고 싶지 않은 실패와 좌절 이런 것들은 궁극적으로 죽음으로 연결되는 인간이 가진 나약함의 일종이다. 우리가 싫어하고 피하고 싶은 종류의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우리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에서 승부가 나지 않는다. 진정한 승부는 우리가 싫어하는 것과 피해가고 싶은 것을 어떻게 마주대하고 어떻게 승부하느냐에 달려있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믿음의 사도인 바울이 자신의 계획이나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대응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바울의 의도를 분명하다. 지금 소아시아로 불리우는 남부지역으로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당시 많은 제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금방 일어날 것으로 믿고 있었다. 바울은 자신의 짧은 인생동안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예비하여 전세계에 복음을 전하고 싶어했다. 당시 그의 세계관 속에 있던 땅끝은 동쪽으로는 소아시아 지역과 서쪽으로는 지금의 에스파냐였다. 그는 아마 이 지역 전체에 복음을 전하려는 장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오늘 본문에 그의 주안점은 지금의 유럽보다는 소아시아 일대에 있었던 것 같다. 그가 나름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전체의 사역을 기획했을 것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그가 원했던 지역에 대한 복음의 문은 열리지 않고 마게도니아인들이 손짓하여 오라는 환상을 보고 사역의 방향을 돌린다. 성경에서 바울은 자신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는게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사 6:6-7)” 아시아로 가려는 자신이 계획과 노력이 실패하고 좌절하는 것에 대해 예수의 영인 성령이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고 고백한다. 성경의 표현을 자세히 보면 그는 아시아의 지역인 비두니아로 가려고 애를썼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는 계획을 세웠고 자신의 계획이 이루어지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했으리라 기대한다.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제적 능력을 동원해서 비두니아로 가려는 노력을 했을 것이라 예상된다.

이 구절에서 몇가지 사펴야 할 지점이 있다.

첫째, 당시 바울이 사용한 능력은 매우 미약한 것이다. 어쩌면 정치적인 이유였을 수 있다. 마게도니아로 도착한 첫 성인 빌립보에 대한 그의 표현은 ‘로마의 식민지’라는 것이다. 이 표현에서 유추해보면 비두니아로 가지 못한 이유가 그곳이 로마의 식민지가 아니라 그곳에 가기 위한 노력이 실패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신약의 대부분을 기록하고 교회사에 가장 중요한 사도인 능력의 종 바울이 정치적인 이유나 다른 이유로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는 부분은 언뜻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는 치유능력이나 귀신을 쫒는 능력을 인해 전도지에서 신의 현현으로 오해받을 만큼 강력한 믿음의 종이였다. 이런 믿음의 종의 의지를 꺽지 위해 주님이 사용하시 방법은 그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 한계들을 사용하신다는 점이다. 그는 세상적인 시각으로 보면 겨우 테트를 짓어 파는 수공업자에 지나지 않았다. 로마 시민권이 있었지만 로마의 정치적으로 힘이 있는 귀족이 아니었다. 세상적으로 그는 당시 보통사람들이 가지는 한계안에 갇혀 있었다. 주님은 그 상황적 한계를 돌파하지 목하게 방식으로 바울을 다루시고 계신다.

하나님이 바울을 이렇게 다루셨다면 주님이 우리도 이러한 방식으로 다루실 것으로 기대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선의를 가지고 옳을 일을 하려 할때도 우리가 평범한 사람으로 가지는 수많은 장애들 예를 들어 돈이 부족하거나 도와줄 사람이 없거나 능력이 부족하거나 체력이 약한 등의 우리의 육체적 인간적 한계들을 그래도 사용한다. 때로는 이런 한계들을 돌파하게 하시기도 하지만 대부분 이런 한계들은 늘 우리에게 상수로 존재한다. 바울은 이런 한계를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사역기간 내내 돌에 맞아 죽을뻔 하거나 태형을 받거나 배가 난파대는 등등의 수많은 좌절을 경험한다. 하지만 수많은 좌절들이 바울을 꺽지 못했던 이유는 이 모든 과정을 주님이 붙들고 계신다는 그의 믿음 때문이였다. 그는 알았다. 자신이 주라고 고백하는 예수가 어떻게 사역했고 어떻게 죽었는지 알았다. 신이였던 하나님의 독생자가 자신을 버리고 인간으 모습으로 말구유 위에, 목수의 모습으로 왔으며 자신이 전한 복음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했던 주님의 생애와 하지만 그런 모습이 결코 실패로 끝나지 않고 부활을 통해 완전한 승리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실패와 좌절은 그냥 실패와 좌절로 끝나지 않는 것이다.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자들에게는 실패와 좌절은 인도와 승리를 위한 투자로 반드시 통과해야할 완성의 한 단계로 주어지는 것이다. 바울이 수많은 박해와 어려움 속에서도 그가 해낸 일들은 찬찬히 묵상해보면 그는 실패나 좌절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는 능력이 그가 가진 신유의 능력이나 우리가 소망하는 특별한 능력을 뛰어넘는 것을 바라본다. 정말 우리가 사모해야 할 능력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