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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기교육정책 칼럼

교장의 학칙제정권 신설은 안되요

by 조은아빠9 2010.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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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의회가 학생인권조례를 통과시켰고, 서울시 교육청을 비롯한 몇몇 교육청들이 학생인권조례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과학기술부가 ‘교장의 학칙제정권에 관한 대통령령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교과부 장관은 12월 2일 교과부를 출입하는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초중등교육법에 명시되어 있는 학칙 제정에 대한 교육감 인가 절차를 폐지하고 교장의 학칙제정권에 관한 대통령령 신설할 것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힌 바 있다.

 

새롭게 신설되는 교장의 학칙제정에 관한 대통령령은 지난 8월 18일 한국교육개발원 주관으로 열린 “학생의 권리와 학교교육의 사명,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 학생권리 신장을 위한 법령 개정 방안”에서 밝힌 초중등교육법에 신설한 제18조 5항의 신설내용을 법률개정 내용을 대통령령으로 전환한 것이다. 당시 신설하려고 했던 법률개정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제18조의5(학생의 권리의 한계) ➀ 제18조의4에 따른 학생의 권리 행사는 학교의 교육목적과 배치되어서는 안 된다.

➁ 학교의 장은 교육활동을 보장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타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학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제18조의4에 따른 학생의 권리 행사를 제한할 수 있다. 다만, 학생의 권리의 본질적인 부분은 제한할 수 없다.

초중등교육법에 명시되어 있는 학칙 제정에 대한 교육감 인가 절차를 폐지하고 위의 조항과 같은 내용이 대통령령으로 신설될 경우 학생인권조례에서 학생의 인권 보장을 위한 규정을 정하더라도, 학교장이 학생들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교장의 권리는 대통령령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위법인 조례에 의해 제한을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에 발효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에서 학생의 두발 길이를 제한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학교장이 학생의 단정한 용모 지도를 그 학교의 중요한 교육목적이라고 규정해 이를 학칙에 담을 경우 조례를 근거로 학교장을 처벌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체벌의 경우에도 시·도 조례를 통해 체벌금지를 규정하더라도 학교장이 학칙을 통해 체벌규정을 신설할 경우 학교에서 체벌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과부과 진정으로 학생인권 개선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초중등교육법에 있는 학칙 제정에 대한 교육감 인가 절차를 폐지하고 교장의 학칙제정권에 관한 대통령령 신설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6·2지방선거를 통해 선출된 교육감이 자율성을 발휘할 때 마다 교과부 장관의 생각과 맞지 않다고 해서 상위의 법률을 통해 교육감의 권한을 축소시키는 일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실제로 교과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이 현실화 될 경우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된 지역의 많은 학교에서 ‘학교의 교육목적’을 명분으로 해서 조례에 어긋나는 많은 규정을 학칙에 담으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학교에서는 학칙을 근거로 기존의 학교 관행을 유지하려는 교사들과 학생인권조례를 근거로 인권을 보장받으려는 학생 사이에 많은 분쟁이 있을 것이고, 이것은 학교를 혼란에 빠뜨리는 또 하나의 불씨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므로 교과부과 진정으로 학생인권 개선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초중등교육법에 있는 학칙 제정에 대한 교육감 인가 절차를 폐지하고 교장의 학칙제정권에 관한 대통령령 신설하는 일을 멈추고 경기도를 비롯하여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된 지역의 학교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지켜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학생인권조례로 통과로 인해 많은 교육적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률적 보완장치를 만들어가면 될 것이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된 지역의 학교들이 초기의 약간의 혼란을 넘어서 학생인권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학교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면, 이러한 학생인권조례를 법률에 반영하여 전국 학교로 학생인권 보장을 확산할 수 있을 것이다.

 

인권친화적인 학교 문화를 만들어가는 부분은 우리 교육이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큰 숙제임에 분명하다. 경기도가 학생인권조례를 통과시켰고, 서울시에서 체벌이 금지되었지만 인권친화적인 학교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첫발에 불과할 뿐이고,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이것이 열매로 피어나기에는 수많은 혼란과 난관, 진통이 예상된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여정을 제대로 도와야 할 교과부가 아직 첫발도 제대로 디디지 못한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기 위한 초중등교육법에 교육감의 권한을 축소시키려는 것은 무책임하고 몰역사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그 의도가 정치적인 것이라면 더욱 불순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