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홍인기교육정책 칼럼

[홍인기 교육정책칼럼] 수능영어 절대평가 전환 찬성한다. 하지만...

by 조은아빠9 2014. 3. 24.
728x90

출처: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http://www.21erick.org/bbs/board.php?bo_table=11_6&wr_id=100021


수능영어 절대평가 전환 찬성한다. 하지만...


홍인기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3월 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수능시험에서 영어를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것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만하다고 밝히면서 관련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 수능시험에서 영어과목이 절대평가가 된다는 의미는 수능 영어과목에서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기존의 방식에서는 영어과목에서 100점 만점에 98점을 획득하더라도 나보다 더 높은 점수를 획득한 사람의 숫자가 4%가 넘을 경우 나는 2등급을 받게 된다. 하지만 절대평가로 전환될 경우 90점 이상의 점수를 획득한 사람에게 1등급을 준다고 기준을 세운 후 수능을 본 사람 모두가 영어에서 90점 이상일 경우 그 모두에게 1등급을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능에서는 모든 과목에 대해 상대평가 등급을 산정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2017학년도 수능에서 필수로 지정된 한국사 과목만이 절대평가를 적용하기로 되어 있다. 
수능에서 영어과목이 절대평가로 전환된다면 학생들은 영어과목에 대한 부담감이 많이 줄어들어 자연스럽게 영어과목 사교육비가 줄어드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수능에서 영어과목이 절대평가로 전환된다고 해서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그런 교육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풍선효과
흔히 “풍선효과”로 불리우는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풍선효과”란 풍선에 어떤 부분이 튀어나올 경우 튀어나온 부분을 제거하기 위해 튀어나온 부분을 누를 경우 그 힘의 작용에 의해 다른 부분이 튀어나오게 되는 것을 말한다. 대학입시라는 풍선의 압력이 그대로 존재하면서 영어과목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면 자연스럽게 그 압력이 수학과 같은 과목의 치열한 경쟁과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 외에도 전국단위의 서열을 확인 할 수 있는 수능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본고사의 부활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주장이 타당한 부분이 있다. 지금까지 경험에 비추어 보면 학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사교육비용이 낮아지는 요소가 발생할 경우 가계 지출에서 사교육비를 줄이기보다는 새로운 지출을 통해 전체비용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방과후학교를 통해 학교에서 저렴한 예체능 교육을 제공할 경우 학부모는 남은 비용을 저축하기 보다는 다른 사교육을 한 과목 더 추가하여 전체 비용을 유지해 왔다. 산업화 과정에서의 자녀 교육투자에 대한 성공신화가 아직도 부모들의 머리 속에 남아있고, 가계지출에서 사교육비를 줄이는 것은 왠지 자녀에 대한 미래를 포기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있기 때문이다.


영어보다는 수학이 
수능에서 영어과목이 절대평가로 전환된다고 해서 대학입시의 문제점이 상당부분 해소될 수는 없겠지만, 수학의 비중이 높아져 사교육에 대한 부담이나 수능에 대한 학생 부담이 이전과 똑같을 것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일단 수능에서 영어과목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다면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 중 영어과목에서 쉽게 1등급을 획득할 수 있는 영어과목 상위권 학생의 경우 치열하게 준비해야 하는 과목이 한 과목 줄어든다. 그만큼 학생의 부담은 경감된다. 이러한 경감 효과를 분명하게 가져오기 위해서는 수능에서 영어시험을 보다 쉽게 내고, 1등급 요건에 해당하는 점수를 낮추는 등의 추가적인 정책이 세밀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수학의 비중이 높아져 사교육에 대한 부담이나 수능에 대한 학생 부담이 이전과 똑같을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는 수학과 영어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과목이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대입이라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을 서열화 하고 선발을 해야 하는 것이 옳지는 않지만 바꿀 수 없는 필요악이라면 비중이 있는 과목이 영어가 되기보다는 수학이 되는 것이 훨씬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영어는 외국어이기 때문에 학생이 가지고 있는 언어에 관한 능력보다는 영어에 노출된 시간에 의해 영어실력이 좌우된다. 서울대 이병민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모국어를 습득하는 능력을 가졌다면 약 1만 시간 정도 영어에 노출되면 영어사용이 가능해 진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영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나라에서 영어에 노출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발생한다. 최근 미디어의 발달로 비용이 상당부분 감소되긴 했다. 하지만 영어에 노출되기 위해 영어사용 국가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학원 등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나 외국인과의 대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영어과목은 부모의 경제력이 좋은 아이가 영어를 잘 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과목이다. 이에 반해 수학의 경우 학생이 가지고 있는 수학적 능력에 의해 성적이 좌우될 가능성이 영어에 비해 높은 학문이다.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 중 “영어는 돈으로 되지만 수학은 돈으로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왜 이런 말이 생겼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영어를 통해 신분상승의 진입장벽을 자꾸 만들수록 우리사회는 교육을 통해 신분의 변화를 가져올 확률이 낮아진다. 쉽게 말해 신분상승의 진입장벽을 만들 때 수학 교과목을 사용하는 것이 영어 교과목을 사용하는 것보다 “개천에서 용이 날”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다고 수학교과목의 중요성이 무한정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 수학에 대한 사교육 거품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한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 대학의 모든 과에서 높은 수준의 수학(數學)능력이 필요하지 않다. 정부는 학과별로 수학(數學)능력에 대한 적절한 기준을 만들어 상위대학이 우수한 학생들을 확보하기 위해 벡타나 기하와 같은 고급 수학 능력이 포함되는 시험을 필수요소로 만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


풍선증대효과 
이번 수능 영어과목 절대평가 전환에 과한 논의에서 우리가 놓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풍선증대효과”이다. “풍선증대효과”는 잦은 대학입시 정책 변화로 사교육비의 총량에 해당되는 풍선의 크기가 커지는 효과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대학입시 정책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입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의 좋다는 대학입시제도를 모두 가져와 시험해 보았다. 하지만 풍선의 압력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노동시장에서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의 급여차별 철폐, 사회안정망 확충, 정규직 확대나 학벌중심의 인사관행 개선과 같은 노력은 소홀히 해왔다. 
가장 최근에 도입한 대학입시 정책으로 “입학사정관제도”가 있다. 문제점을 해결한다고 자꾸 풍선을 누르면 한번 늘어났던 부분의 풍선의 탄력성이 약화되어 같은 압력에도 풍선의 크기가 커지게 된다. 예를 들어 입학사정관제도가 생기면서 관련 스펙을 관리하고 컨설팅 해주는 사교육이 생겨나면서 새로운 사교육비를 발생시켰다. 새롭게 생성된 시장은 관련 종사자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에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논술학원의 경우 대학입시제도에서 논술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논술의 중요성에 관한 논리와 여론을 만들고 관련 정책이 사라지지 않도록 로비도 한다. 
잦은 대학입시제도 정책변화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켜 풍선 안에 압력을 증가시키기도 한다. 부모들은 대학입시에 너무나 많은 요소들이 작용하기에 점점 더 어린 시절부터 보험을 들어두는 마음으로 관련 사교육을 시키게 된다. 학부모들에게 대학입시제도의 예측가능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결국 정부의 이런 저런 대책이 결과적으로는 풍선의 크기를 자꾸 키우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중산층이 줄어들고 강남 따라잡기를 포기하는 소득층이 늘어남에도 쉽게 사교육비가 줄어들지 않는 것은 정부의 대학입시와 관련한 각종 대책의 잦은 변화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번 논의도 관련 인터뷰를 자세히 살펴보면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편과 연결되어 있다. 교육부가 밝힌 대로 교육과정이 문·이과 통합형으로 개정하게 되면 2021학년도 수능에서 개정된 교육과정에 맞춰 수능 개편이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절대평가로의 전환 논의는 2016∼2017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수능영어과목의 절대평가 전환은 어쩌면 실현 불가능한 논의가 될 수 있다. 문·이과 분리 교육과정이 너무나 오랜 세월 우리사회에 존재해 왔기에 통합형 교육과정이 쉽게 이루지기도 힘들어 보인다. 2018년 2월에 현 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된다는 정치일정을 고려해 볼 때 실현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대학의 정원을 유지할 경우 2018년부터는 고교 졸업자수가 대학정원에 못 미치기 때문에 경쟁이 대폭 완화되면서 대학입시제도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 
지금은 수능영어과목의 절대평가 전환 논의가 전문가들의 수준에서 논의되어 충실성을 더해가야 할 시기이다. 장관이 지나치게 관련 논의를 이끌어 가면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다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민들의 불안을 키워 사교육시장 전체를 확대할 뿐이다. 역대 정권에서 장관들은 자신의 성과를 드러내기 위해 입시 정책을 지나치게 장밋빛으로 제시하면서 서둘러 정책을 발표해 왔다. 수능영어과목의 절대평가 전환은 약간의 장점만을 가지고 있다. 그 양이 그리 크지도 않다. 섣부른 논의로 발생 가능한 이득을 미리 모두 까먹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