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고발로 저는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세 번째로, 수사의뢰와 고발을 당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법정에 서야 할지 참담한 마음 가눌 길이 없습니다. 권력의 위협에 위태로운 우리 교육, 우리 교육자치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교육행정이 무엇인가, 교육행정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 생각합니다.
교과부의 징계요구와 고발조처는 예견된 일이기도 합니다. 교과부는 올 초 짧은 검토를 거쳐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사안을 기재하도록 지침을 발표했습니다. 졸업 후 5년 동안 기록을 유지해 아이의 미래까지 빼앗겠다는 놀라운 대책입니다. 우리 교육청은 이 지침이 지나치다고 지적하고 시행을 만류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교과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나서서 학생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 폭력기록 중간 삭제나 졸업 전 삭제 등을 권고하였습니다. 권고도 바로 거부당했습니다.
학생부에 빨간 줄을 그어 진학과 취업을 못하게 하겠다는 것은, 낙인을 찍어 사회에서 낙오시키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교육의 영역을 한참 넘어서는 것으로 교육 포기 선언과 다름없다 할 것입니다. 우리 교육청은 인권위 권고에 따라 교과부가 종합적인 개선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기재를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교과부는, 이번에는 대규모 인력을 교육청에 보내 특정감사를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교과부가 행한 회유와 압력을 우리 경기교육 가족은 비상근무를 하며 똑똑히 지켜보았습니다. 400시간 가까이 진행된 특감에서 교과부는, 직접 투입된 감사단 뿐 아니라 온갖 학맥 인맥을 동원하여 학교폭력 기재를 강제하였습니다. 그 자체가 폭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마지막까지 교육자로서의 양식을 지킨 저희 교육자들에게, 유례가 드문 대규모 징계와 고발이라는 권력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졸속으로 만들어진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지침을 밀어 붙였지만, 그 정당성을 끝내 인정받지 못하자, 마지막 수단으로 행정폭력을 통한 보복으로 대미를 장식하려고 합니다.
저는 교과부의 이번 징계와 고발조처를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과부 징계는 학생부 지침이라는 첫 단추가 잘못된 탓으로, 연쇄적으로 수렁에 빠져 헤매다 부여잡는 지푸라기 같은 것입니다. 법적으로, 교육적으로, 상식적으로도 정당성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번 일에 관계된 경기교육가족들을 보호하는데 만전을 기할 것입니다. 일선 학교 교장 교감선생님과 교사까지 망라한 징계에 대해 모두 재심의를 요구할 것이며, 고발에 대해서도 적절한 법적 대응조처를 취할 것입니다.
교과부의 징계요구와 고발은 초중등교육법이 위임한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지침을 어겼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학생부 기재지침이라는 훈령이 법의 위임을 받았기 때문에 기재를 보류한 것이 법을 어긴 것과 같다고 합니다. 훈령이 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면, 훈령이 법과 같다는 이상한 결과가 나옵니다. 지침은 그냥 훈령일 뿐입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제약하는 이번 지침은, 그 자체가 헌법 위반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헌법 소원도 제기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교과부가 교육청 고위간부와 교육장에 대해 특별징계위원회를 열어 직접 징계하겠다는 것은 규정상 불가합니다. 교육공무원 임용 규정을 보면 이들에 대한 임용과 징계권은 교육감에 위임돼 있습니다. 위임된 권한은 상급기관이 행사할 수 없고, 교육감 신청이 있어야 징계가 가능합니다. 위법임을 알면서 교과부가 특별징계위원회를 강행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들의 징계 요구에 대해 일절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 교장 선생님까지 직무유기죄로 고발한다고 합니다. 직무유기가 무엇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 수행을 거부하거나 유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권위 권고까지 거부한 지침, 헌법소원까지 제기돼 있는 지침에 대해, 교육적 판단에 따라 시행 보류한 것이 정당한 이유가 아니라면, 교육 행정의 정당성은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명백히 할 점은, 저의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보류 조처는 법에 따른 합법적 조처라는 것입니다. 초중등교육법에 규정된 교육 학예에 관한 교육감의 지도 감독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교육청 직원들과 일선 선생님들은 교육감의 합법적인 지시를 따른 것입니다.
잘못된 지침의 개선을 호소한 교육장을 징계요구하고 폭력적인 특감을 비판한 교육청 대변인을 고발하는 것은, 겁박과 보복으로 반대의견을 틀어막으려는 의도에 다름 아닙니다. 졸렬함의 전형입니다.
이제 교과부의 징계요구와 고발로 자율성과 다양성을 향해 나아가던 주민직선 교육자치는 중대한 기로에 놓였습니다. 우리는 중앙 교육권력에 맞서 막 피어나려는 교육자치를 지켜야 할 막중한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교육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교육자들입니다. 교육의 출발은 학생들이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임을 믿는 일입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의 최대 과제는 학교폭력 해소입니다. 우리는 학생부 기재라는 쉽고 폭력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힘들고 어려운, 그러나 가장 올바른 길을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학교폭력으로 인한 피해자를 최우선적으로 지켜나갈 것이며,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겠지만, 그들의 미래까지 빼앗는 교과부 지침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교과부는 이제라도 징계요구를 철회하고 고발 방침을 거둬들여 대화와 소통의 장으로 나오기 바랍니다. 학생부 기재지침의 위헌적이고 반교육적인 부분을 개선하기 바랍니다.
경기교육가족 여러분께서는 변함없이 아이들 교육에 전념하시기 바랍니다. 그 누구도 교과부의 이번 조치로 피해 입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교육의 이름으로 중앙권력의 폭력에 맞설 것이며, 결단코 우리들의 소중한 교육자치를 수호할 것입니다.
2012년 10월 22일
경기도교육감 김 상 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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