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정말 애쓰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생활인권 부장 선생님께!
안녕하십니까? 경기도교육감입니다.
요즘 교직사회에서는 피해야 할 업무 1순위로 생활인권당당을 꼽는다는 어느 선생님의 말씀이 내내 뇌리에 남아 세모를 맞으며 선생님께 이 편지를 씁니다.
제도 시행 초기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시행착오와 다양한 갈등 상황에 대한 걱정을 포함하여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 어려운 일을 기꺼이 감당하시면서 낯선 제도가 올바른 교육 문화로 정착되는 데 최선을 다해 주신 선생님께 교육감으로서 진심을 다해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며칠 전 학교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중학생의 편지를 읽으면서 제 마음이 아팠습니다. 가해 학생들의 폭력불감증에 가까운 행위를 보면서 ‘저 모습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단순히 학생 개개인의 특성이라기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 공감하려는 능력, 인권 감수성, 공동체 의식 등을 우리 사회가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정교육의 부재, 미디어의 폭력성, 지식 중심의 입시 체제, 인성 교육이 상실된 학교가 만들어낸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갈수록 학교 현장을 지키는 것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선생님들이 적지 않습니다. 선생님들은 늘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 애를 쓰시지요. 날이 갈수록 지도하기 힘든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편지를 쓰고, 가정 방문을 하고, 상담을 하고, 학생자치회를 활성화시키고, 공동체의 룰을 새롭게 만들고,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연수를 받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봅니다.
경기도교육정보연구원이 올 10월에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선생님들의 83.9%가 “학생인권조례 적용으로 학생 지도의 어려움이 가중됐지만 학생생활지도를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답했습니다. 이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서 제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해법을 찾아나가려는 선생님들의 모습은 교육자적 양심과 열정의 표상입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경기도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습니다. 인권조례 하나가 한국교육의 문화 지형도를 새롭게 그려내었습니다. 일부에서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마치 교육을 망치는 것인 양 언급할 때마다 느껴지는 당혹감과 안타까움은 지금도 여전히 통증의 하나입니다. 특히 학생인권조례가 체벌을 금지하면서 교사가 학생을 지도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학교현장에서 학생들을 사랑으로 지도하고 계신 선생님들의 노고, 그리고 선생님들의 자존심과 전문성을 무참하게 무시하는 처사라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합니다.
학생인권조례가 학교 현장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학생인권조례가 예상보다 빨리 문화로 정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뜻있는 선생님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 덕분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인권담당 선생님들의 숨은 노력들이 여러 오해들을 불식시키고 학생인권과 교권이 상호보완적이라는 공감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합니다.
무엇보다 인권조례 시행으로 선생님들의 부담이 컸음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행했다는 것은 그 만큼 어려운 시행착오와 갈등상황을 먼저 맞는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익숙한 것을 내려놓는 일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습니다. 머리로 인식하는 옳음과 익숙해진 관행 사이에서 참으로 많은 갈등과 어려움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재와 응징, 불신과 반항으로 악순환을 거듭하던 ‘지도방식’은 교사들 스스로 인권에 대한 잠재적인 피해자가 아니라 학생인권의 일차적인 옹호자임을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교실이 서서히 ‘교감과 소통의 교육적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서울, 광주, 강원, 전북, 전남에서도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했거나 추진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경기도에서 진행된 인권과 관련한 노력이 곧 전국적인 모습으로, 시대적 대세로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인권'과 ‘민주주의’는 거부할 수 없는 커다란 인류사적 흐름입니다. 그 흐름을 우리 경기도 선생님들께서 주도해 주셨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자 선생님의 일차적 역할임을 서로에게 확인시키며 교육적 본질을 되물었습니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지켜져야 할 소중한 권리입니다. 교권의 보호가 곧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논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교권이 더 이상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상습적으로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교사의 정당한 교육적 지도에 불응하는 학생에게는 행동의 원인을 살피는 세심한 돌봄과 함께 민주적 절차에 근거한 단호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이제 학생 인권과 반하는 구시대적인 교권을 뒤로하고 시대상을 반영한 새로운 교권의 확립이 필요한 때입니다.
교사의 권위는 교과 전문성을 비롯해 학생들과 나누는 진실한 소통, 그리고 사랑과 헌신에 대한 존경으로부터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것입니다. 통제위주의 생활지도에서 벗어나 학생들과 진실한 소통에 기반한 배움 속에서 선생님들의 권위는 한층 높아질 것입니다.
인권은 아직 다소 낯선 문화일지도 모릅니다. 인권의 의미를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갈등과 혼란이 빚어질지도 모릅니다. 이해와 존중의 시선으로 참고 기다려 줄 때 학생들은 스스로 깨달아가며 훌륭한 자아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일부 동료 교사분이나 학부모, 그리고 학생들 중에서 학생인권에 대하여 악의적으로 왜곡하거나 잘못 인식하는 부분이 있다면, 여러분들께서 ‘인권의 옹호자’로서 진정을 다해 그 분들을 설득하여 주십시오.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우리 모두를 존엄하게 하고, 우리 교육을 살리는 근본처방의 하나임을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를 쓰면서 정호승 시인의 시 한 구절을 떠 올립니다.
봄 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
선생님이 바로 봄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 없어도 학생들에 대한 사랑으로 한없이 교육에 헌신하시는 선생님이 바로 경기교육의 미래입니다. 선생님의 노력이 우리 학교와 교육을 새롭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지금껏 노력해 오신 것처럼, 우리의 학교가 인권친화적인 행복한 학교가 될 수 있도록 선생님의 정성과 실천을 더욱 보태어 주십시오.
선생님 여러분! 지난 한 해 정말 애쓰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복된 새해 맞으십시오.
2011. 12. 29.
경기도교육감 김상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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