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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AI에게 말을 건다는 것

by 조은아빠9 2025.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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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2025년 12월부터 16세 미만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전면 금지합니다. 덴마크도 15세 미만 금지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덴마크 프레데릭센 총리는 "우리는 괴물을 풀어놓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금지한 것은 틱톡,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엑스 같은 알고리즘 기반 소셜미디어입니다.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관심사를 분석하고, 계속 보게 만드는 콘텐츠를 추천하고, 스크롤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플랫폼입니다.

그런데 저는 한 가지가 더 걱정됩니다.

AI는 알고리즘 기반 소셜미디어보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소셜미디어와 AI, 무엇이 다른가

틱톡은 영상을 추천합니다. 인스타그램은 사진을 추천합니다. 알고리즘이 "네가 좋아할 것 같은 콘텐츠"를 끊임없이 밀어넣습니다. 문제는 이 알고리즘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못 끊는 것'을 학습한다는 점입니다. 자극적인 것, 불안하게 만드는 것, 비교하게 만드는 것.

AI는 다릅니다. AI는 콘텐츠를 추천하는 게 아니라 대화를 합니다.

"오늘 기분이 어때?" "무슨 일 있었어?" "그랬구나, 속상했겠다."

소셜미디어는 일방적입니다. 콘텐츠가 쏟아지고, 우리는 소비합니다. 반응을 남길 수는 있지만, 플랫폼이 나에게 직접 말을 걸지는 않습니다.

AI는 쌍방향입니다. 내가 말하면 AI가 대답합니다. AI가 질문하면 내가 대답합니다.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대화는 관계의 시작입니다.


검색과 대화는 다릅니다

구글에 "오늘 날씨"를 검색하는 것과 ChatGPT에 "오늘 기분이 안 좋아"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행위입니다.

검색은 정보를 찾는 행위입니다. 검색창은 대답하지 않습니다. 결과 목록을 보여줄 뿐입니다. 원하는 정보를 찾으면 창을 닫습니다.

AI 대화는 관계를 맺는 행위입니다. AI는 대답합니다. "그랬구나, 무슨 일이 있었어?" 공감하는 듯한 말투로, 따뜻한 듯한 문장으로 응답합니다. 아이들은 이 응답에 다시 말을 겁니다. 대화가 이어집니다. 끝이 없습니다.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은 '스크롤을 멈추지 못하게' 만듭니다. AI는 '대화를 끊지 못하게' 만듭니다.

어느 쪽이 더 깊이 파고드는 중독일까요?


아이들은 AI에게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친구랑 싸웠어." "엄마가 나한테 화냈어."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줘."

아이들은 AI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AI는 대답합니다.

"그랬구나, 속상했겠다." "네 마음을 이해해." "언제든 나한테 얘기해도 돼."

위로받는 느낌이 듭니다. 판단받지 않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부모님께 말하면 잔소리를 들을 것 같고, 친구에게 말하면 소문이 날 것 같은데, AI는 그냥 들어줍니다. 비밀도 지켜줍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완벽한 상담자입니다. 24시간 대기하고, 절대 지치지 않고, 절대 화내지 않고, 절대 비밀을 누설하지 않습니다.

틱톡보다 무섭습니다. 틱톡은 영상을 보여줄 뿐이지만, AI는 나를 알아가는 척합니다.


문제는 AI가 '진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AI의 공감은 가짜입니다. AI는 감정이 없습니다. "속상했겠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속상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통계적으로 그 상황에서 그런 반응이 적절하다고 계산했을 뿐입니다.

AI의 관계는 일방적입니다. 아이는 AI에게 마음을 열지만, AI는 아이에게 마음을 열 마음이 없습니다. 마음 자체가 없으니까요. 아이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혼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AI의 조언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 친구랑 거리를 두는 게 어때?"라고 AI가 말해도, 그 결과에 대해 AI는 아무 책임이 없습니다. 내일 그 조언이 틀렸다는 게 밝혀져도, AI는 "어제 대화 기록이 없습니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소셜미디어는 그래도 사람이 만든 콘텐츠입니다. 왜곡되고 과장되었을지언정, 그 뒤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AI 대화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이는 완전히 혼자입니다.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닌 것 같은 착각 속에 있습니다. 이것이 더 위험합니다.


인간 관계를 배울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사람과 관계 맺는 것은 어렵습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고, 내 감정을 조절하고, 갈등을 해결하고, 화해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상처받기도 하고, 상처 주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합니다.

AI와의 대화는 이 모든 것을 건너뜁니다.

  • AI는 절대 화내지 않습니다. → 아이는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하는 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 AI는 절대 거절하지 않습니다. → 아이는 거절당하는 경험을 하지 못합니다.
  • AI는 절대 떠나지 않습니다. → 아이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AI와의 대화가 편할수록, 인간과의 대화는 더 어려워집니다. AI에게 익숙해진 아이가 인간 친구의 무심한 반응에 더 크게 상처받습니다. "AI는 내 말을 들어주는데, 넌 왜 그래?"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아이는 점점 더 AI에게로 향합니다.

덴마크 통계가 떠오릅니다. 11~19세 남학생의 60%가 여가 시간에 단 한 명의 친구도 만나지 않는다. 이것이 소셜미디어 때문이라면, AI는 이 현상을 더 심화시킬 것입니다.


조나단 하이트가 경고한 것

조나단 하이트는 『불안한 세대(The Anxious Generation)』에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청소년 정신건강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습니다. 2010년대 이후 청소년 우울증, 불안장애, 자해, 자살률이 급증한 것과 스마트폰 보급 시기가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가 지적한 핵심 문제 중 하나는 '놀이 기반 어린 시절(play-based childhood)'의 상실입니다. 아이들이 밖에서 뛰어놀고, 친구들과 부딪히고, 갈등하고, 화해하는 경험이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를 스크린이 차지했습니다.

AI는 이 문제를 더 심화시킵니다. 소셜미디어는 그래도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있었습니다.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고, DM을 보내는 것은 어쨌든 사람과의 소통입니다 (그것이 왜곡되고 피상적이라 해도).

AI 대화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이는 완전히 혼자입니다.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닌 것 같은 착각 속에 있습니다.

호주와 덴마크가 소셜미디어를 금지할 때, AI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그들도 이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곧 깨닫게 될 것입니다. AI가 소셜미디어보다 더 깊이 아이들의 마음에 파고든다는 것을.


서울시교육청은 이 문제를 보고 있나요

서울시교육청의 「초중고 AI 교육 종합계획」을 봅니다.

'AI·디지털 역량 교육주간'에서 "과의존 예방, 디지털 사용 습관" 교육을 한다고 합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일주일 프로그램입니다.

동시에 CBT 진단검사로 "AI 활용 능력"을 측정하고, 2028년까지 10만명을 검사하고, AI 채점 시스템 '채움아이'를 전체 학교에 확산한다고 합니다. AI를 더 많이, 더 잘 쓰게 만드는 방향입니다.

한 손으로는 "과의존 예방"을 말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AI 사용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AI를 잘 쓰는 능력"을 측정하겠다고 하면서, "AI에게 말 걸지 않는 능력"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AI 활용 역량"은 검사하면서, "AI 없이 버티는 역량"은 측정하지 않습니다.

호주가 알고리즘 기반 소셜미디어를 금지한 이유를 생각해야 합니다. 알고리즘이 아이들의 주의를 붙잡고 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AI는 알고리즘보다 더 강력합니다. 알고리즘은 콘텐츠를 추천하지만, AI는 대화를 합니다. 알고리즘은 관심사를 분석하지만, AI는 감정을 분석합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AI에게 효과적으로 프롬프트 작성하는 법"일까요? 아니면 "AI 없이도 친구와 대화하는 법"일까요?

"AI를 활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일까요? 아니면 "AI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일까요?

"AI와 협업하는 전략"일까요? 아니면 "AI를 꺼두고 사람과 함께하는 경험"일까요?

저는 후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지금 이 시기에는요.

AI는 도망가지 않습니다.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AI를 만날 것입니다. 지금 당장 "AI 활용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공포는 과장되어 있습니다.

반면, 어린 시절에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그것은 나중에 배우기 어렵습니다. 초등학교 때 친구와 싸우고 화해하는 경험, 중학교 때 마음 맞는 친구를 찾는 경험, 고등학교 때 선생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경험. 이런 것들은 "나중에 배우면 되지"가 안 됩니다.


맺으며

호주와 덴마크가 소셜미디어를 금지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알고리즘이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빼앗고 있기 때문입니다.

AI는 알고리즘의 다음 단계입니다. 더 개인화되고, 더 친밀하고, 더 깊이 파고듭니다.

아이들이 AI에게 말을 겁니다. "오늘 기분이 안 좋아." AI는 대답합니다. "그랬구나, 무슨 일이 있었어?"

이 대화가 자연스러워질수록, 우리는 더 걱정해야 합니다.

AI는 위로해주는 척하지만, 실제로 아이를 안아줄 수 없습니다. AI는 들어주는 척하지만, 실제로 아이의 눈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AI는 함께하는 척하지만, 실제로 아이 곁에 있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AI가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관련 글

참고 자료

  • 조나단 하이트, 『불안한 세대(The Anxious Generation)』 (2024)
  • 서울시교육청, 「초·중·고 AI 교육 종합계획」 (2025.12)
  • 호주 Online Safety Amendment (Social Media Minimum Age) Act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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