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같은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4월 16일 입시 경쟁의 고단한 삶을 잠시 내려놓고 세월호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해 무려 304명의 승객들이 배의 침몰과 함께 생명을 잃었습니다. 처음에 전원 구조라고 보도하니 우리는 걱정하지 않았고, 또한 기울어지는 배일지라도 진도 근해 바다 위에 떠 있었으니 구조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안심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배는 가라앉고 배 안에 있던 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참담한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문명사회라고 하는 이 땅에서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사고가 터진 지 30일째 되는 오늘까지, 우리는 우리 곁을 떠난 그 꽃다운 어린 생명들을 생각하며, 슬픔과 분노 그리고 미안함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그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잘못은 어른들에게 있습니다. 우리 어른들의 부패, 우리의 무관심, 우리의 깨어있지 않음, 일상의 작은 부패와 잇대어 있는 큰 권력의 부패에 있습니다. 잘못은 응당 잘못한 사람들의 책임으로 묻는 것이 마땅하거늘, 어찌 힘없는 아이들의 몫이 되어 이렇게 살아남은 이들을 부끄럽게 하는지, 부모된 우리는 지금 미안함과 슬픔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6년 전 우리는 새로운 결심을 했습니다. 그때 이 땅에서 입시고통으로 인해 죽어가는 아이들의 죽음에 우리 마음이 아팠습니다. 입시 경쟁으로 인한 괴로움을 견딜 수 없어서 푸르른 생명을 아파트 옥상에서, 학교에서, 학원에서 끊어내는 저 참혹한 죽음의 행렬을 멈추어야하겠다 생각하고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세대가 끝나기 전 반드시 우리 부모들의 힘으로 저 사슬을 끊어 내리라 결심하고 모든 것을 쏟으며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마음 아픈 것은, 우리의 모든 수고가 열매를 얻기 전에 이렇게 뜻하지 않은 사고로 아이들이 우리 곁을 속절없이 떠났다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우리의 다짐이 결실을 맺기도 전에, 아이들은 그것을 기다려 주지도 않고 떠나버렸습니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에서, 어른들의 부패와 탐욕,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아이들의 생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4월의 봄꽃 같은 생명들이 입시 경쟁의 고단한 삶에 시들다가, 좋은 날을 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황망히 우리 곁을 떠났으니 부모된 자들로서 우리의 슬픔과 미안함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한 책임은 응당, 일차적으로 선박 회사의 잘못이고 선장의 잘못이고 구조 책임을 방기한 해경의 잘못이며 이 모든 것의 정점에는 최종적으로 감독 관리 책임이 있는 대통령과 정부의 잘못입니다. 그것을 피해간다면, 그것은 나라의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한 최종 권한이 자신에게 없다고 자인하는 셈입니다. 무릇 더 큰 권한을 가진 이들이 더 큰 책임을 져야하는 법입니다. 남들이 책임지라 말하는 것 이상으로 더 큰 책임을 스스로 통감할 때, 그것이 슬픔을 당한 유가족들을 제대로 위로하는 길이요 권력을 가진 이들의 도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참사 이후 대통령과 정부는 피해자 가족과 국민의 슬픔을 울분과 분노로 격화시킨 장본인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선장은 대통령이고 공무원은 선원들임을 망각한 채 선장과 선주, 하급기관에게만 책임을 덧씌우는 모습들은, 위험에 처한 승객들을 내팽개치고 자신의 목숨만 소중히 여긴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의 모습과 하등 다를 게 없어 보였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었다면 이렇게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유가족과 국민적 분노의 그 실체가 무엇인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책임 떠넘기기와 여론 회피하기와 민심 달래기용 미봉책을 대책이라고 내놓는다면, 위기의 역사에서 떨쳐 일어났던 전국민적 저항을 결코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부모들이라고 해서 어찌 잘못이 없다며 피해갈 수 있겠습니까? 생명을 경시하고 오직 돈만 생각하며 안주하는 천박한 직업의식, 입시 경쟁과 학교 폭력 등 각종 사고로 남의 자식들이 죽어가도 내 자녀만 안전하면 된다는 개인주의 등이 우리 삶을 잠식해도 이를 어쩔 수 없다고 방치한 나태함,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핑계로 세상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에 눈 감고 살아온 나약함, 공직사회와 권력의 부패를 감시하지 않은 채 일상의 안위만을 중시한 주권자로서의 무책임, 그것을 바로잡고자 어둠을 빛으로 가르며 생명과 아이들을 지켜 내는 일에 늘 깨어있고자 하는 성심의 부족, 그것이 오늘의 비극을 만든 또 하나의 이유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잘못을 비난하지 않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 친구들을 구하고 남겨진 가족들을 걱정하며 떠나갔습니다. 그러니 부끄럽게 남겨진 우리는 저 꽃다운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이 참사를 끝까지 기억해야하겠습니다. 죽어간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에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지켜야할 ‘나만의 자녀’는 없으며,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부모로서 지켜야 할 자녀들인 것이고, 그 모든 아이들을 지켜내려는 치열한 싸움을 하지 않으면 자기 자식마저도 결국 지킬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합니다. 또한 “안전의 영역을 넘어서, 생명을 경시하고 약자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 모든 영역에서 벌어지는 잘못된 제도와 관행과 의식을 근본에서부터 바로 세워야한다”고 절규합니다.
슬픔에 빠진 유족들을 살피고 생존자들을 돌아보며, 그들의 가슴 속에 생긴 큰 상처를 씻기 위해 온 국민이 힘써야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유가족들의 상처에 다시 아픔을 주는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말로만 조의를 표하는 것이 아니라, 터져 나오는 눈물로 그들 곁에 가서 손을 잡고 함께 우는 것만이 참된 위로임을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참사를 기억하는 일에 매진해야할 것입니다.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우리의 잘못일지라도, 그것을 드러냄으로 기억하고 또 기억해서, 과거의 그 기억이 오늘과 내일을 새롭게 하는 디딤돌이 되도록 힘써야할 것입니다. 기억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지 않도록, 이 날을 기억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거기서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참다운 기억은, 생명을 휩쓸어간 잘못을 유발했던 나쁜 제도와 관행을 일소하는 것에 있습니다. 아니 참다운 기억이란, “생명을 경시하고 돈을 숭배하는 이 한국사회에서, 약자를 지켜 주며 생명을 중시하는 새 날을 위해, 살아남은 이들이 안전과 교육, 인권과 복지, 직업 윤리 등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질서, 새로운 법률, 새로운 의식을 만들어내는 일”에 있습니다.
그 모든 일의 첫 출발은,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에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한 책임을 묻는 일입니다. 얼마만큼 진정성을 갖고 그 일을 잘 감당하느냐가 정부 대책의 진정성을 신뢰하는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정부와 국민들 앞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하고 제안합니다.
정부에 대한 우리의 요구
1. 이 사태에 대한 정부 대책은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에 초점을 맞춰야하며, 이를 위해 공정하고 독립적인 특별 기구를 신설해야합니다.
▲정부가 이 사태에 대한 종합 대책을 곧 내기로 예고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종합 대책은 진상 조사를 실시하여 원인이 규명되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사고의 원인과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온 종합 대책은 부실할 수밖에 없고, 그럴 경우 국민적 신뢰를 더욱 잃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가서 다시 무엇을 하겠다고 한들, 누가 이를 인정하겠습니까? 따라서 정부가 정치적 부담을 의식해서 급한 불을 끄고자 부실한 대책을 서둘러 발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일단 첫 대책은 유가족들에 대한 충심을 다한 사죄를 하고, 철저한 진상 조사와 아울러 그에 따른 책임자 문책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어야합니다.
▲지금 사고의 원인과 수습과정의 잘못에 관한 소식이 끝도 없이 터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정부 당국의 발표 역시 국민적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에 대해 “공정하고 독립적인 특별 기구를 통해 유가족들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만큼”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엄벌해야합니다. 정치적 부담을 느끼고 이를 비켜가고자 한다면, 국가와 정부에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2. 유가족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보살피고 보상할 적극적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언론 방송사들, 정치인들, 사회의 각계 지도층들은 이번 희생자들의 슬픔을 비하하는 신중치 못한 발언이나 보도를 삼가야하고, 이런 행위가 확인될 경우에 이를 엄단하고 사법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정부는 참으로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자세로, 슬픔을 당한 유가족들과 생존자들을 치유하고 위로하고 보상할 국가적 수준의 종합 대책을 세워야합니다.
3. 안전의 영역에서는 물론이요 다른 영역에서도 또 다른 세월호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 ▲직업 윤리와 부패 방지, ▲입시경쟁교육 극복, ▲인권과 복지” 등 아이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4대 영역에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가칭 “세월호 참사 방지 특별법”(가칭)을 제정해야합니다.
▲이번 사고를 교훈 삼아 오직 안전에 대한 대책만 세우는 것은 이 사고가 주는 교훈을 축소하는 것입니다. 온 국민이 슬퍼하는 것은 단지 안전의 영역에서 사고가 났기 때문이 아니라, 꽃다운 어린 생명들이 죽은 것 자체로 인한 슬픔이요, 입시경쟁 등으로 그들의 삶이 고단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더 큰 이유입니다.
▲‘안전, 입시 교육, 직업윤리의 실종과 부패, 인권과 복지’ 등의 영역에서 아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은 앞으로도 꼬리에 꼬리를 물 것입니다. 이에 대한 근원적인 대책을 마련해야합니다. 이번 기회에 여야가 합심해서, 더 이상 이렇게 억울하게 죽는 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세월호 방지 특별법’(가칭)을 제정해야합니다.
4. 4월 16일을 “국가 재난 추모 기념일”로 제정하고, “국가 재난 추모 기념관”을 건립하여, 온 국민들이 이 사고를 기억하도록 해야 합니다.
▲부끄러운 일일지라도 이를 직면하고 기억하도록 하는 일은 또 다른 사고를 방지하는 지혜입니다. 이를 위해 4월 16일을 국가 재난 추모 기념일로 제정하고 동일한 이름의 기념관을 건립해야합니다.
▲정부를 비롯해 공직사회와 사회 각 기관에서 각각 생명을 경시하고 부패가 만연한 관행을 일소하도록 직업 윤리 규범을 만들고 4월 16일 “국가 안전 기념일”에 이 규범을 따라 이행 여부를 점검, 감독하여 국민 생명 안전 지수를 매년 체크하고, 생명 중시 및 직업 윤리 등 주요 영역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에 면모를 일신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수장된 세월호를 인양해서 이 기념관에 전시하여 재난에 대한 학습장으로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요, 세월호 사고 이후 국민들의 다양한 조문 물품과 리본, 동영상 등을 빠짐없이 수거하여 이날의 아픔을 생생하게 기억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5. 이번 참사를 기점으로 또 다른 재난을 방지하기 위해,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국가 재난으로부터 생명을 지키는 시민운동’을 시작해야할 것입니다.
▲현재 각계 각층에서 이번 재난과 관련해서 사회적으로 이를 방지할 새로운 운동과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이 슬픔을 개인적인 일로 묻어두지 않고 우리 사회를 바꾸는 새로운 운동의 계기로 삼아 그 아픔을 승화해야합니다. 그것이 아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입니다. 또한 이번 세월호 참사 뿐 아니라 이전에 발생한 재난으로 아직도 아픔을 겪고 있는 가족들이 많습니다. 사회적으로 이들 피해 가족들을 돕는 운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 각계는 적극 지원에 나서야할 것입니다.
▲또한 정부는 교사들이 제자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다양한 애도 집회에 참여하거나 SNS로 소통하는 것을 막거나 징계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명분에서건 그 마땅한 인륜의 도리를 막는다는 것은 정부가 이 참사에 진심으로 애도하고 있지 않다는 반증입니다. 오히려 모든 학교에서 애도 및 재발 방지를 위한 계기 수업이 이루어지도록 지원해야할 것입니다.
향후 우리의 행동
우리는 세월호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다음과 같은 활동에 힘쓰고자 합니다.
1. 5월 19일(월)부터 우리 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의 신청을 받아, 이상의 요구 사항을 정부가 수용하도록 광화문 광장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2. 안전과 입시경쟁교육 극복, 직업 윤리와 부패 방지, 인권과 복지 영역에서 생명을 지켜주는 ‘세월호 방지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뜻을 같이 하는 단체들과 함께 시민 영역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준비하는 일에 착수하겠습니다.
3. 우리는 학교 안팎에서 학생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잘못된 관행과 비리 등을 신고 접수받아 이를 해결하는 “교육 안전 신고 센터”를 운영하며, 특히 학교 내 각종 비리와 부패가 근절되는 운동에 나서겠습니다.
4. 우리는 6월 12일 창립 6주년을 계기로 우리 부모들이 이런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가정의 실천 선언문을 만들고 이를 실천하는 일을 시작하겠습니다.
5. 우리는 정부가 국민과 유가족들의 신뢰를 받는 올바른 대책을 세울 때까지 지속적으로 국민의 입장에서 바른 목소리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6. ‘입시 경쟁’과 사교육 고통이라는 또 다른 세월호로 인해 매년 200명 이상의 아이들이 죽어가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더욱더 성심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7. 이상의 활동 뿐 아니라 이후 상황을 주시하면서 필요한 추가 행동들이 필요할 경우에 시민들과 함께 이를 적극적으로 전개할 것입니다.
2014. 5. 15.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송인수, 윤지희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한 회원 의견 모음(HWP)
기자회견문(HWP)
기자회견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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