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교육 규제법은
성취평가제의 내실화와 학습안전망 강화로
이어져야 한다
▲ 선행교육 규제법으로 인해 대학의 비정상적 출제 관행에 제동이 걸리고 이로 인해 초중등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할 것
▲ 선행교육 규제법에도 불구하고 평가의 난이도 문제는 여전히 존재할 수 있고 이로 인한 사교육 수요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기에 성취평가제를 제대로 적용하는 것이 필요
▲ 성취평가제의 온전한 정착을 위해서는 고교 입시의 개선, 성취기준의 타당성 제고, 학습안전망 강화가 따라야 함
▲ 수능시험에 대비한 고교 교육과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능의 난이도와 고교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일치시켜야 함
▲ 새로 설치될 교육과정위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공교육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하 선행교육 규제법)이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좋은교사운동은 선행교육 규제법의 제정을 환영하며, 이 법이 실제 학교 현장에서 효력을 발휘하기 위하여 필요한 후속 조치가 제대로 수립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선행교육 규제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들이 특별히 새로운 것을 의미한다고 보지 않는다. 정상적인 학교 교육과정을 준수하라는 것이 왜 법으로까지 제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오히려 의문이 있을 법하다. 그것은 지금까지 현실적으로 학교 교육과정을 사문화시키는 수업과 평가와 상급학교의 입학전형이 횡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제대로 견제받지 않고 방치되어 왔다는 방증인 셈이다. 이제 법의 제정으로 말미암아 규제의 근거가 확실해졌으므로 교육 당국은 정상적인 학교 교육과정의 운영을 위한 책임을 다해 주기 바란다.
선행교육 규제법으로 인해 대학에서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를 출제함으로써 초중등 교육의 비정상화를 초래하던 문제는 일부 해소될 것이다. 지나치게 빠르고 어려운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과잉 학습과 학습 소외의 문제,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교육 수요는 상당 부분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내신의 경우 수업 진도를 통제한다고 하여 난이도 문제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범위 안에서도 문제를 얼마든지 어렵게 낼 수 있다. 이는 결국 변별력을 요구하는 상대평가체제 속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문제다. 학생들을 변별하기 위해 일부러 문제를 꼬아서 낸다거나 지엽적인 문제를 낸다거나 하는, 이른바 ‘함정 문제’를 출제하는 방식으로 왜곡되어 나타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하여 볼 것은 성취평가제이다. 성취평가제는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에 의거하여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도 교육과정 평가기준은 있었지만 학교에서는 별 의미가 없었다. 평가기준보다는 주어진 교과서에 의해 출제하거나, 아예 교과서를 무시하고 입시에 맞추어 시험을 출제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러한 관행에 대해 일정 부분 제동을 걸고 있는 것이 성취평가제이다. 2012년에 도입된 성취평가제는 출제 시 성취기준에 의거하여 문항을 제작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과거보다는 시험 문제의 타당성이나 난이도가 개선되었다는 현장의 평가가 있다. (<기로의 성취평가제, 어디로 갈 것인가> 참조 http://www.goodteacher.org/bbs/board.php?bo_table=pds&wr_id=126)
하지만 아직도 성취평가제는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여전히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상대평가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모순된 두 운영 체제가 작동하면서 현실적으로는 상대평가의 구조 속에서 성취평가제는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상대평가제로 인해 성취평가제가 유명무실화된다면 결국 선행교육 규제법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한 또 다른 방식의 경쟁은 여전히 남아 있어 그것으로 인한 사교육 수요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의 완전한 정착이 될 수 있도록 교육부는 후속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적어도 초중학교에서 성취평가제가 정착될 수 있도록 고교 입시에서 상대평가에 의한 성적순으로 선발하는 체제를 개선하여야 한다.
둘째, 다음으로 따라야 할 작업은 성취기준 그 자체의 타당성과 난이도를 점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지나치게 많고 어렵다는 것은 여러 교육전문가들이 지적해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과정 개정 때마다 교육과정 총량을 줄이겠다는 공언을 한 적이 여러 번이지만 교육과정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인해 실패해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제정된 교육과정이 학생들에게 큰 고통을 주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은 교육과정을 그대로 두고서 교육과정을 준수하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교육과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성취기준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 면밀하게 점검하여야 한다. 이 작업은 소위 전문가들에게만 맡겨서는 안 되고 현장교사들의 광범위한 의견 수렴을 거쳐 수행되어야 한다. 2013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중3의 32.7%가 수학에서 기초학력에 미달(50점 미만)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등학생의 절반 정도가 수학 50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세계일보 2014년 2월 10일 기사: 일반계고 48.1%의 학교별 수학 평균 점수 50점 미만) 학생들이 문제인지, 교사가 문제인지, 아니면 교육과정 자체가 문제인지를 물어야 한다. PISA 성적 상위권의 우리나라 학생들과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교사들이 최장의 학습시간을 투입하고 그에 더하여 과잉된 사교육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성적이 나오고 있다면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는 자명하다. 바로 지나치게 많고도 어려운 교육과정이 문제다. 멀쩡한 학생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좌절하게 만들고 있는 교육과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셋째, 교육과정의 적용에 있어 획일적 적용을 탈피하여 학생 개인별 특성에 맞춘 개별 맞춤형 교육과정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자칫하면 선행교육 규제법은 교육과정의 운영을 획일화 경직화시킬 수 있는 형태로 왜곡될 수 있다. 개인별로 학습 속도가 다르고 특성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여 교육과정은 개인에 맞추어서 유연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자칫 선행교육규제법을 경직되게 획일적으로 적용하여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면 많은 것을 잃을 것이다. 그것이 교사의 교육기획력을 위축시켜서는 곤란하다. 모든 학생이 반드시 성취해야 할 공통 핵심 역량 성취 기준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가르치고 평가를 하되 교사의 모든 교육활동을 그 안에만 묶어 놓아서는 안 된다. 더 심화해서 가르칠 수도 있고, 개인별 특성에 맞추어 개별화된 평가도 열어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처럼 상대평가를 염두에 둔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획일적 평가의 틀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넷째, 특별히 학습부진학생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여야 한다. 잘못된 교육과정과 선행교육의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학습부진학생이다. 학습부진학생들을 위한 학습안전망을 강화하여야 한다. 성취평가제는 모든 학생의 충분한 발달을 돕기 위한 기제로 작동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학생의 특성과 속도에 맞는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여러 이유로 학습에 곤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이 그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학습부진학생을 도울 수 있는 전문교사를 확충하여야 한다.
이와 별도로 중요하게 지적될 문제는 수능시험이다. 사실상 대부분의 학교가 선행 수업을 하는 이유는 수능 시험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시험을 위해서 미리 진도를 마치고 복습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는데 이제 이를 규제하게 되면 결국 학교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가 초래되고 사교육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질 수 있어 사교육 수요를 더욱 촉발시킬 수 있다.
문제는 난이도다. 수능은 교육과정 내에서 출제된다고 하지만 변별을 위해서 평가되고 있기 때문에 난이도가 높다. 성취기준대로 평가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도 결국 수능의 난이도에 맞추어 평가를 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능이 정상적인 교육과정의 운영을 방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정상적인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에 의거하여 가르치고 평가하도록 하는 것이 선행교육 규제법의 본래 목적이라면 그것을 근본적으로 방해하고 있는 수능의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성취평가제와 수능은 서로 정합 관계에 있어야 한다. 학교 내신이 A를 받았으면 수능에서도 A등급에 준하는 성적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만약 학교 내신에서는 A를 받았는데 수능시험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결국 성취평가제를 부정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수능시험은 고등학교의 성취기준을 그대로 반영하고 절대적인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선행교육 규제법은 큰 틀에서 대학의 출제 관행에 제동을 걸고, 이로 인해 발생했던 초중등교육의 왜곡을 바로잡는 근거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도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한 평가가 작동함으로써 이로 인한 사교육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성취평가제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학교 교육과정의 정상화를 완성하고 사교육 수요를 근본적으로 차단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고입체제의 개선, 성취기준에 대한 전면적 검토, 교육과정의 유연화와 학습 안전망의 강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고등학교의 정상적 교육과정 운영을 왜곡할 수 있는 수능시험을 개선해야 한다. 앞으로 설치될 교육과정위원회는 이 문제에 중점을 두고 역할을 수행하기 바란다.
2014년 2월 21일
좋은교사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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