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다 -공립학교에서 마을활동하기 ②
‘마을활동’은 학급을 마을처럼 운영하는 것이다. 마을 안에는 돈도 있고 직업도 있다. 일단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을 노동으로 생각해서 아이들이 수업을 하면 수업수당을 받게 된다. 그리고 마을에 필요한 각종 직업(시장, 경찰, 판사, 재정경제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은행원, 문구점, 슈퍼마켓, 신문사, 우체국) 등을 정하고 일한 만큼 수당도 지급한다. 이렇게 번 돈으로 아이들은 물건도 사고 벌금도 내는 것이다. 직업의 종류와 벌금 등에 대한 사항은 마을 회의를 통해서 정한다. 이것이 마을 법률이 되어 아이들의 생활을 규율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호에는 마을 운영에 대해 좀 더 소개해 보고자 한다. (고양 냉천초, 홍인기)
어린이 회의
마을활동을 하고 나서 가장 달라진 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서슴없이 어린이회의 시간이라고 한다. 학급경영을 해본 교사라면 생동감 있는 어린이회의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알 것이다. 각 부서를 정하지만 실제로 부서가 하는 일이 없고 생활주제도 너무나 공허하다. 그래서 어린이회의 시간이 곤욕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국민의례를 열심히 하고 교가까지 불러도 시간이 남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마을활동을 하고 나서 어린이회의가 마을회의가 되고 나면 국민의례도 생략해야 할 만큼 시간이 부족하다. 아이들이 마을법률에 대해 나름대로의 문제점을 느끼고 새로운 법률의 필요성과 기존의 법률의 문제점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실제로 우리 반에서 일어났던 일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요즈음 아이들에게 유희왕 카드는 정말 대단한 인기이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이 카드놀이에 빠져 아이들이 수업준비를 하지 못한 적이 심심찮게 발생했다. 이때, 담임으로서 카드를 하지 못하게 하면 아이들과 많은 마찰이 벌어지게 되며 자율성도 떨어지게 될 것 같아 마을회의의 안건으로 상정하였다. 우리 반 아이들이 이 카드놀이에 대해 내린 마을회의 결정사항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공부시간이 끝나고 빨리 자리에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한 벌금이 가해졌고, 카드놀이를 하지 않는 아이들이 카드놀이를 할 수 있는 요일을 정하게 되었다. 만일, 이러한 마을 결정을 계속 어기게 되면 다음번 회의에서는 규칙을 좀 더 엄격하게 정해서 아예 카드를 학교에 가져오지 못하도록 정하자고 논의되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제시한 규칙들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진지함 때문에 어린이회의 결정사항은 교사의 제지보다 더 큰 압력을 가지게 되고, 아이들의 행동을 자제시키는 데 더 효과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결정한 사항을 지켜나가는 것 등 마을회의에서는 정말 살아있는 토론과 민주주의의 교육이 가능하다. 이러한 마을회의는 자신들이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자세를 길러준다.
부작용
마을활동에도 몇 가지 부작용이 있다. 아이들이 돈을 많이 가지려고 하고 돈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않을 경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돈의 값어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또한, 아이들 사이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슈퍼마켓의 경우에는 많은 돈을 벌게 된다. 아이들 중에서는 자신의 돈을 쓰지 않고 모으기만 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에게 돈을 바르게 쓰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꼭 있어야 할 직업이 복지재단이다.
복지재단
우리 반의 마을 이름은 조은마을인데 조은마을에서는 월드비젼에서 하고 있는 한 학급 한 생명 살리기 운동을 하고 있다. 작년부터 몽골에 있는 한 아이를 학급이 입양해서 아이의 생활비와 교육비를 후원하고 있다. 월드비젼에 신청하면 신청할 나라를 정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복지재단의 일이 시작된다. 아이들과 함께 후원나라를 정하는데 조은마을에서는 우리와 같은 혈통이라는 이유로 몽골이 선택되었다. 나라가 지정되면 월드비젼에서 아이를 한 명 지정해 주는데 그 아이의 사진과 간단한 엽서 등이 도착한다. 학급게시판의 한 공간에 아이의 사진과 편지 등을 붙여두고 아이들의 관심을 유도한다. 사실 아이들은 현금을 내지 않고 교사의 통장에서 매달 2만원이 자동 이체 되지만 아이들에게는 매달 2천냥을 모으도록 한다. 교사가 환전소가 되어서 아이들이 기부한 2천냥을 현금으로 교환에서 월드비젼에 보내는 것으로 하면 된다. 교사의 금전적 희생이 필요하다.
모금 이벤트-경매
기부금을 모으는 방법으로는 돈을 많이 가진 아이들이 기부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한두 번은 되지만 그렇게 쉽지 않다. 최근에 가장 인기 있는 모금이벤트는 경매이다. 처음에는 주인을 찾지 못하던 물건들을 경매하기 시작했다. 물론 경매로 벌어들인 수익금은 전액 복지재단으로 들어간다. 재미있는 점은 아이들이 경매가 시작되면 별로 중요한 물건도 아닌데 경쟁이 붙어서 경매가가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는 것이다. 경매 한 번에 전 재산을 거는 아이들도 많다. 분실물 외에도 두레를 정한 후 두레가 앉고 싶은 자리를 경매해도 재미있다. 이번 주에는 미술시간에 유리창 꾸미기를 했는데 교실에 있는 유리창 중에서 두레별로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유리창도 경매했다. 아이들은 경매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 경매의 결과가 복지재단에 쓰이기 때문에 더욱 안심하고 마음껏 경매에 참여하게 된다. 담임의 입장에서는 인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는 정말 좋은 방법이다.
자유직업
한 학기가 끝날 쯤에 시간이 남으면 자유직업 기간을 정하는 것도 재미있다. 아이들이 학급을 위해 필요한 사업 아이템을 구상해 오면 교사가 직업의 개설을 허락하는 것이다. 마을활동을 한 학기 정도 하고 나면 아이들은 모두 장사를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공무원들도 필요하고 교실이 늘 시장이 될 수 없기에 정상적인 마을활동을 위해서 장사가 많은 것은 좋지 않다. 하지만, 방학 전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 자유직업의 날을 정하여서 아이들에게 장사할 기회를 마음껏 부여하면 아이들의 욕구를 많이 해소할 수 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사업 아이템이 반 아이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여자아이들은 주로 네일아트나 비즈공예를 통한 목걸이 반지 장사를 좋아한다. 남자아이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난감을 대여하는 대여점이나 만화 대여점 등을 할 수 있다. 어떤 아이들은 만화 캐릭터를 그려서 판매하거나 집에서 칼라인쇄를 해 와서 판매하기도 한다. 책상 위에 종이로 축구장 같은 것을 만들어 돈을 받고 놀도록 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이 마음껏 발휘된다. 가끔씩 나도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