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캄보디아 1월 12일

조은아빠9 2013. 2. 1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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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모든 교육일정이 끝나서인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뒤척이다 새벽 1시쯤 잠이 들었지만 중간에 몇 번 깼다. 목적이 사라진 허전함 때문일까?

아침 8시 첫날 아침을 먹었던 미희 레스토랑으로 출발했다. 강영희 선교사님이 우리를 위해 식사를 쏘셨다. 미희 레스토랑에서 많은 선교사님들을 뵈었다. 토요일 아침식사는 보통 이곳에서 하시나 보다. 바이사츄와 쌀국수가 1달라 정도 하니 정말 부담이 없다.

숙소로 돌아와 청소와 물건 정리를 하고 그동안 덮었던 이불과 침낭을 빨았다. 이불과 침낭은 세탁기로 빨수가 없어서 모처럼 손빨래를 했다. 뒷마당에 찬양을 틀어놓고 커다란 다라이에 이불을 넣고 밟고 손을 물을 짜면서 힘든 일이지만 축제처럼 이불빨래를 했다. 우리가 너무 시끄럽게 떠들고 놀았는지 이웃사람들이 우리를 구경할 정도였다. 천국에서는 노동도 기쁨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여기는 천국을 맛보는 현장이다.

카래로 점심을 먹고 킬링필드로 향했다. 어렸을때 단체 영화로 관람을 했던 킬링필드의 실제 현장을 가게 되었다. 가는 길은 시골이라 정말 먼지가 많았다. 캄보디아를 무력으로 장악한 크메르 루즈는 근본주의적인 공산주의자여서 캄보디아를 공산국가를 만들기 위해 국민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부르조아 계급을 모두 죽이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혁명을 일으키신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을 위해 무참히 사람을 죽였던 역사는 참으로 끔직하다. 어찌 크메르루즈 뿐일까? 기독교는 십자군 전쟁과 마녀사냥을 통해 신·구교의 전쟁과 유태인 학살에 이르기까지 신념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꿈들이 사람을 죽이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숙연해 진다. 우리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걸까?

킬링필드를 마치고 돌아와서 다시 시장을 방문했다. 지환이를 잃어 버릴뻔 해서 쇼핑은 포기하고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잠시 쉬었다. 저녁식사는 한국식 중국집인 “면류관(머리에 쓰는 것이 아니라 먹는 면류를 말함)”에서 먹었다. 처음으로 캄보디아식 미원 맛이 나지 않는 음식이여서 좋았다. 저녁을 먹는 동안 희은이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조은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뚝뚝이를 타고 선교사님 집에 가서 차를 타고 제일병원으로 갔다. 뚝뚝이를 타기 위해서 유태종 선교사님이 마스크를 사주셨다. 매연과 건기라 먼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뚝뚝이를 탁고 밤거리를 달리다 보니 낮에만 보던 프놈펜과 다른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해가 지고 다녀보기는 캄보디아에 와서 처음이다. 캄보디아도 밤문화가 있었다. 미장원에서 단장하고 하이힐을 신은 아가씨들을 태우고 달리는 아저씨와 맥주집과 네온싸인도 보였다. 희은이는 다행히 주사를 맞고 괜찮아 졌다. 선교사님 덕분에 10%할인을 받았다.

선교사님이 빵을 사기 위해 뚜레쥬르에 잠시 들렀는데 그 과정에서 처음으로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이 갓태어난 아기를 안고 구걸하는 아줌마와 아이들이 나타났다. 낮 동안은 이런 방식의 구걸이 더워서 불가능해서 우리가 볼 수 없었다. 길거리에 홈리스들도 보였다. 노인과 손주도 보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있었다. 희은이의 두드러기 덕분에 많은 것을 보았다. 뚜레즈 프놈펜 대리점은 빵이 거의 떨어졌다. 생수 1병에 1달라가 넘은 이 매장의 빵들은 일반 캄보디아인들을 사먹을 수 없는 비싼 가격임에도 빵은 모두 팔리고 없었다. 캄보디아 거리에서는 한국보다 많은 렉서스를 만날 수 있다. 빈부의 격차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숙소에 돌아오니 선생님들은 예배를 마치고 도전 골든벨을 준비하셨다. 이분들은 정말 지치지도 않는다. 지난 2주동안 있었던 모든 일로 도전골든벨을 준비했다. 꼼꼼하고 세심함이 작렬한 시간이다. 지난번 보물찾기 선물 이후 정말 이분들을 존경하기로 했습니다. 난이도 10점 만점에 늘 9점 이상입니다. 이렇게 12일 밤은 깊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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